2000년 즈음에 쓰고 2010년에 이곳으로 옮기다
얼마전 컴백한 SES의 새 앨범을 듣다가 <달리기>와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이 곡은 원래 윤상과 신해철이 야심차게 만들었던 [노땐쓰] 음반에 있던 곡이었는데(최근에 발매된 윤상의 공식3집 [클리쒜]에도 있다), 그의 목소리 때문일까, 굳이 색을 따지자면 붉은 광기의 신해철보다는 어두운 우울의 윤상과 더 닮아있는 곡이었다.
이 앨범이 나왔을 때가 1996년도이니깐 내가 아마도 '왠지' 힘들어야 할 것 같은 고3시절을 힘겹게 이겨내고 있었을 때였을꺼다. 윤상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반갑기 그지 없을테지만 나를 조금이나마 망설이게, 그리고 동시에 더 큰 기대감을 갖게 했던 것은 신해철이란 사람에 대해 내가 갖고있는 반감이었다. ‘왠지 모르게 싫은’ 뮤지션을 열명정도 꼽으면 당연히 들어갈 신해철이란 이름은, 내가 거의 10년간을 아껴왔던 윤상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것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네들이 과연 ‘조화’라는걸 이룰수 있을지, 이룬다면 어떤 색깔일지가 나의 커다란 궁금증이었다. 아마도 앨범 발매되기 전에 윤상이 인터뷰에서 “신해철씨와 저의 색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재미있고 의미있는 거겠죠” 라던 그 말 때문에 난 의심없이 구입(!)할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당시 나와 같은 반이었던 미숙이란 친구는 내가 윤상을 좋아하는 것 만큼이나 열성적인 신해철의 팬이었다. 우리는 그다지 닮은점이 없었던 친구였지만, 이 앨범하나로 왠지 윤상과 신해철이 음악이란 이름으로 함께 녹아내리듯, 우린 어느새 꽤 친근한 동지가 되어있었고 그 친구와 나의 화제는 단연 그 앨범에 실린 다소 – 당시로서는 – 엽기적인 드로잉과 사진, 철학적인 노랫말들, 그리고 무엇인가 새롭게 들리던 사운드였었다.
아무튼 그 당시 숨막히는 하루하루 속에서 나에게 힘들 주던 기특한 친구는 낡은 AIWA 워크맨이었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는 3시간을 충전하여도 30분 돌아가면 금새 지쳐버리는 이 늙은 녀석과 함께 무료함을 달랠 수 있었고, 기력이 다해가는 순간에도 이 대견스런 친구는 나에게 주옥 같은 노래들을 꾸역꾸역 들려주며 날 위로해 주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내가 ‘그나마’ 순탄한 고3생활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윤상의 음악들 특히 그중에서도 이 <달리기>라는 곡의 숨은 공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그런지 요즘에도 이 노래를 들을때면 그당시 불이 환하게 켜져있던 교실과, 낡은 책상과, 숨죽이며 공부하던 친구들의 지친 얼굴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때문에 과거이기에 당연히 느껴지는 알싸함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지쳐있던 청춘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이렇게 <달리기>의 노랫말은 나에게 정말 ‘틀림없이 끝이있다’는 단 한가지 약속을 확실히 믿게 해주었고, ‘끝난 뒤엔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수있을 것’이란 희망을 주었다.
지겨운가요 힘든가요 숨이 턱까지 찼나요.
할수 없죠 어차피 시작해 버린 것을.
쏟아지는 햇살 속에 입이 바싹 말라와도
할수 없죠 창피하게 멈춰설 순 없으니.
단 한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끝난 뒤엔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것.
지겨운가요 힘든가요 숨이 턱까지 찼나요.
할수 없죠 어차피 시작해 버린 것을.
쏟아지는 햇살 속에 입이 바싹 말라와도
할수 없죠 창피하게 멈춰설 순 없으니.
이유도 없이 가끔은 눈물나게 억울하겠죠.
일등 아닌 보통들에겐 박수조차 남의 일인걸.
단 한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끝난 뒤엔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것
It's good enough for me.
bye bye bye bye...
그런데 SES 의 목소리로 다시 태어난 이 노래는, 윤상이 다시 프로듀싱했다는 애정어린 마음에 대한 감동만큼 커다란 어색함을 안겨주었다. 아마도 개인적으로 라이브를 못하는 댄서에 가까운 가수들을 결코 싫어하긴 하지만, 그래도 바다의 분위기와 가창력은 매우 선호하는 터라, 단지 SES라는 가수가 그 어색함의 원인은 아니었을 것 같다. 물론 그 노래를 가슴 깊게 새겨들을 수 있었던 ‘힘든’ 상황이 모두 지나갔기 때문일수도 있다. :-) 우습지만 결국 아하~! 했던 이유는 바로 윤상과 SES가 주는(혹은 ‘설정’하고있는) 이미지란것 때문이었을거다.
항상 행복에 겨워 사는 사랑스런 친구와 세상에 대해 잔뜩 뒤틀린 시선을 가진 다른 친구가 있다. 처음의 친구는 나에게 늘 세상은 이렇게 재미난 것이라고, 나의 달콤한 미소와 분홍빛 볼로 세상을 다 안을 수 있다고 재잘거리며 떠들어대던 녀석이다. 그런데 반해 두번째 친구는 늘 무엇이 그렇게도 불만인지 등을 돌리거나 인상을 찌뿌리기 일쑤고, 나의 자잘한 고민과 상념에 대해 냉철한 충고보다는 그저 묵묵히 나의 말을 귀담아 주는 녀석이다. 재기발랄한 첫번째 친구는 ‘행복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나의 행복함을 뺏어가진 말아줘’라고 소리치며 저 멀리 도망가 버리기 쉬웠지만 두번째 녀석은 한동안 까맣게 잊고 살다가도 언제라도 돌아보면 저 멀리에서 묵묵하게 나를 지켜보고 있던 녀석이었다.
그런 두 친구가 나에게 똑 같은 말을 속삭인다. 첫번째 친구녀석은 여전히 발랄한 목소리로, 자기의 행복함을 자랑하듯이 떠들기에, 그 충고들이 왠지 붕붕 떠다니는 느낌이고, 두번째 녀석이 했던 그 말들은 평소 씨니컬한 그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기에 더욱 진실하게 다가왔다. 내가 힘들고 숨이 턱까지 찰때마다 관심없는 듯 그저 차갑게 듣고만 있던 녀석이었는데, 이렇게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토닥거려주는 느낌. 정말로 사랑받고 위로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한다. 그래서 '이유도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면서 억울함을 같이 달랠수 있을 것 같다.
:-)
얼마전 컴백한 SES의 새 앨범을 듣다가 <달리기>와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이 곡은 원래 윤상과 신해철이 야심차게 만들었던 [노땐쓰] 음반에 있던 곡이었는데(최근에 발매된 윤상의 공식3집 [클리쒜]에도 있다), 그의 목소리 때문일까, 굳이 색을 따지자면 붉은 광기의 신해철보다는 어두운 우울의 윤상과 더 닮아있는 곡이었다.
이 앨범이 나왔을 때가 1996년도이니깐 내가 아마도 '왠지' 힘들어야 할 것 같은 고3시절을 힘겹게 이겨내고 있었을 때였을꺼다. 윤상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반갑기 그지 없을테지만 나를 조금이나마 망설이게, 그리고 동시에 더 큰 기대감을 갖게 했던 것은 신해철이란 사람에 대해 내가 갖고있는 반감이었다. ‘왠지 모르게 싫은’ 뮤지션을 열명정도 꼽으면 당연히 들어갈 신해철이란 이름은, 내가 거의 10년간을 아껴왔던 윤상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것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네들이 과연 ‘조화’라는걸 이룰수 있을지, 이룬다면 어떤 색깔일지가 나의 커다란 궁금증이었다. 아마도 앨범 발매되기 전에 윤상이 인터뷰에서 “신해철씨와 저의 색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재미있고 의미있는 거겠죠” 라던 그 말 때문에 난 의심없이 구입(!)할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당시 나와 같은 반이었던 미숙이란 친구는 내가 윤상을 좋아하는 것 만큼이나 열성적인 신해철의 팬이었다. 우리는 그다지 닮은점이 없었던 친구였지만, 이 앨범하나로 왠지 윤상과 신해철이 음악이란 이름으로 함께 녹아내리듯, 우린 어느새 꽤 친근한 동지가 되어있었고 그 친구와 나의 화제는 단연 그 앨범에 실린 다소 – 당시로서는 – 엽기적인 드로잉과 사진, 철학적인 노랫말들, 그리고 무엇인가 새롭게 들리던 사운드였었다.
아무튼 그 당시 숨막히는 하루하루 속에서 나에게 힘들 주던 기특한 친구는 낡은 AIWA 워크맨이었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는 3시간을 충전하여도 30분 돌아가면 금새 지쳐버리는 이 늙은 녀석과 함께 무료함을 달랠 수 있었고, 기력이 다해가는 순간에도 이 대견스런 친구는 나에게 주옥 같은 노래들을 꾸역꾸역 들려주며 날 위로해 주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내가 ‘그나마’ 순탄한 고3생활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윤상의 음악들 특히 그중에서도 이 <달리기>라는 곡의 숨은 공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그런지 요즘에도 이 노래를 들을때면 그당시 불이 환하게 켜져있던 교실과, 낡은 책상과, 숨죽이며 공부하던 친구들의 지친 얼굴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때문에 과거이기에 당연히 느껴지는 알싸함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지쳐있던 청춘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이렇게 <달리기>의 노랫말은 나에게 정말 ‘틀림없이 끝이있다’는 단 한가지 약속을 확실히 믿게 해주었고, ‘끝난 뒤엔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수있을 것’이란 희망을 주었다.
지겨운가요 힘든가요 숨이 턱까지 찼나요.
할수 없죠 어차피 시작해 버린 것을.
쏟아지는 햇살 속에 입이 바싹 말라와도
할수 없죠 창피하게 멈춰설 순 없으니.
단 한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끝난 뒤엔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것.
지겨운가요 힘든가요 숨이 턱까지 찼나요.
할수 없죠 어차피 시작해 버린 것을.
쏟아지는 햇살 속에 입이 바싹 말라와도
할수 없죠 창피하게 멈춰설 순 없으니.
이유도 없이 가끔은 눈물나게 억울하겠죠.
일등 아닌 보통들에겐 박수조차 남의 일인걸.
단 한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끝난 뒤엔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것
It's good enough for me.
bye bye bye bye...
그런데 SES 의 목소리로 다시 태어난 이 노래는, 윤상이 다시 프로듀싱했다는 애정어린 마음에 대한 감동만큼 커다란 어색함을 안겨주었다. 아마도 개인적으로 라이브를 못하는 댄서에 가까운 가수들을 결코 싫어하긴 하지만, 그래도 바다의 분위기와 가창력은 매우 선호하는 터라, 단지 SES라는 가수가 그 어색함의 원인은 아니었을 것 같다. 물론 그 노래를 가슴 깊게 새겨들을 수 있었던 ‘힘든’ 상황이 모두 지나갔기 때문일수도 있다. :-) 우습지만 결국 아하~! 했던 이유는 바로 윤상과 SES가 주는(혹은 ‘설정’하고있는) 이미지란것 때문이었을거다.
항상 행복에 겨워 사는 사랑스런 친구와 세상에 대해 잔뜩 뒤틀린 시선을 가진 다른 친구가 있다. 처음의 친구는 나에게 늘 세상은 이렇게 재미난 것이라고, 나의 달콤한 미소와 분홍빛 볼로 세상을 다 안을 수 있다고 재잘거리며 떠들어대던 녀석이다. 그런데 반해 두번째 친구는 늘 무엇이 그렇게도 불만인지 등을 돌리거나 인상을 찌뿌리기 일쑤고, 나의 자잘한 고민과 상념에 대해 냉철한 충고보다는 그저 묵묵히 나의 말을 귀담아 주는 녀석이다. 재기발랄한 첫번째 친구는 ‘행복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나의 행복함을 뺏어가진 말아줘’라고 소리치며 저 멀리 도망가 버리기 쉬웠지만 두번째 녀석은 한동안 까맣게 잊고 살다가도 언제라도 돌아보면 저 멀리에서 묵묵하게 나를 지켜보고 있던 녀석이었다.
그런 두 친구가 나에게 똑 같은 말을 속삭인다. 첫번째 친구녀석은 여전히 발랄한 목소리로, 자기의 행복함을 자랑하듯이 떠들기에, 그 충고들이 왠지 붕붕 떠다니는 느낌이고, 두번째 녀석이 했던 그 말들은 평소 씨니컬한 그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기에 더욱 진실하게 다가왔다. 내가 힘들고 숨이 턱까지 찰때마다 관심없는 듯 그저 차갑게 듣고만 있던 녀석이었는데, 이렇게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토닥거려주는 느낌. 정말로 사랑받고 위로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한다. 그래서 '이유도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면서 억울함을 같이 달랠수 있을 것 같다.
:-)
at 2010/03/15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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