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3000장 리미티드 에디션. 윤상님께서 직접 사인하시고 게다가 넘버링까지. 윤상 앨범이라면 없는 게 없지만 (물론 몇 장은 테이프로만) 15만원을 넘는 고가에도 불구하고 나같은 골수팬의 지갑을 흔쾌히 열게 한 머리 쓴 마케팅이 아닐까 ㅠ_ㅠ 알면서도 살 수 밖에 없는 나.. 바보같은 나..

리마스터링의 진정한 가치를 구분할 수 있을 만큼 고급 귀를 가진 것도 아니고 이 한정판을 손에 넣은 발빠른 3000명을 윤상님께서 직접 만나주는 것도 아니지만 (그럼 얼마나 좋아! 1번부터 3000번까지 올림픽 공원으로 집합-!), 또 한번의 20년이 지나 그야말로 윤상'옹'의 데뷔 40주년을 맞이했을때 '20년전에 이미 내가 이 앨범을 소유했었노라' 혼자 뿌듯해 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다. 다행인 건 함께 들어있던 원본 씨디와 리마스터링 씨디를 비교해들어보니 구분은 가더라. 간만에 구석에 쳐박아두었던 씨디플레이어도 꺼내보고, 추억에 잠겨 행복해지려던 찰나, 가사와 사진이 담겨있는 북클릿에 팬들이 써준 주옥같은 글귀들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불같은 질투심에 위경련이 막 일어나면서.. ㅠ_ㅠ 난 왜 몰랐던 거야, 이런 깜찍한 아이디어는?! 네이버 윤상 카페 분들의 작품인 것 같은데, 아아아 네이버 아이디조차 없는 나란 여자..


어쨌거나 다시 마음의 평화를 찾고 한장 한장 찬찬히 들어보게 되었다. 사운드적인 면에서는 역시, 가장 음질의 차이가 많이 났던 1집 <이별의 그늘>을 최신 사운드로 듣는 감동이 제일 컸다. 20년전 차가운 방바닥에 누워 카세트플레이어를 귀에 가까이 대고 그의 숨소리를 느껴보려 하악하악 애썼던 중2의 소녀가 오늘을 상상이나 했을까. 20년동안 그 명성을 그대로 유지해줘서 넘 고맙다, 윤상.

무엇보다도 가장 큰 감동은 내가 가장 오랫동안 듣지 않았던 <Renacimiento> 앨범. 그나마 <Insensible>에 실린 곡들은 3집 <Cliche>의 extra cd에 수록되어 아주 익숙하지만, 이 <Renacimiento>의 윤상이 부르지 않은 곡들은 당시에는 왠지 너무 생소하여 그다지 주의깊게 듣지 않았던 것 같다. 그치만 거의 15년이 지나 다시 진지하게 들은 이 앨범은 그야말로 진짜배기. 음악적인 깊이를 떠나서 윤상이 만들었지만 윤상답지 못한 흥행을 보여주었던 곡들이 외국가수의 목소리로 다시 완성되었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라 할 수 있을 거다.
Joined by the heart는 박주연이라는 당대 최고의 작사가가 가수로까지 데뷔하면서 야심차게 선보였던 앨범에 무려, 윤상과, 듀엣으로 불렀던 '사랑을 할 때까지'라는 곡이 원곡이다. 과연 이를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윤상이 간만에 지르는 창법을 선보였던 곡인뎅 :-) 당시에 이 곡을 소유하고 싶긴 했으나 박주연의 앨범까지 구입하는 용기는 없었던 나는 그저 라디오에 나왔던 것을 녹음해서 들었던 것 같다. 윤상, 박주연 모두 개성있는 보컬이겠지만 여기 <Renacimiento>에 실린 가수들의 목소리가 더 중후하고 끈적이는 분위기가 더욱 매력적인 것 같다. Domani piove와 I giomi della musica는 원곡인 '가려진시간사이로'와 '이별의 그늘'의 포스가 워낙 커서인지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아직은 조금 힘든 면이 있다.
그러나..
그 다음 곡인 S'amier en silence라는 곡에서 나는 다리에 힘이 풀리는 충격을 경험하게 되는데.. 아아아아 뭐지, 이건? 이거 뭐지? 뭐지? 분명히 윤상이 만든 곡일텐데 원곡이 뭐였는지 도무지 생각이 안난다. 하지만 중요한 건 원곡이 뭐냐가 아니라 이 곡이 너무너무너무 좋다는 것이다! 특히 심장을 톡톡 두드리듯 시작하는 도입부.. 그리고 가수의 목소리, 도무지 뭔말인지 모를, 그래서 더욱 매력적인 불어!! (방금 번역된 가사 폭풍검색 해봤는데.. 아아아 그저 너무 좋다) 어떻게 이렇게 좋은 노래를 내가 그냥 지나칠 수 있었던 걸까. 윤상하면 물론 '발라드'가 떠오르긴 하지만, 가끔식 이렇게 가슴이 무너저 내릴 듯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느낌의 곡을 들을 때면 새삼스레 깜짝 놀라곤 한다. 근래에는 이런 감성을 전자악기로 표현한다는 점에 또 한 번 놀라고..
그냥 이 느낌만 간직할까, 몇 번이고 망설이다가 원곡을 찾아보았다. 역시나 예상대로 강수지. 94년 발매된 그녀의 5집 타이틀곡으로 수록되었던 '아름다운 너에게'이다. 뭐랄까, 강수지의 아련한 분위기에 딱 맞긴 한데 역시나 <Renacimiento>에 담긴 버전이 훨씬 좋다. 물론 윤상이 군시절 내내 쌓였던 하고 싶었던 모든 것들의 내공이 폭발한 앨범이니 오죽 공을 들였을까.
이 앨범이 나왔을 때는 그냥 둬도 좋은 곡들을 왜 굳이 생전 모르는 외국가수들이 새로 부르게 했을까 의아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뒤늦게 진가를 깨닫는 지금, 앞으로 또 20년이 지나면 그동안 그가 작곡해서 남들이 불렀던 곡들을 이런 식으로, 아니면 그가 직접 불러 스페셜 앨범을 또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바램이 생겼다.
암튼 나는 2782번이다.
한정판 소유 3000명 특별 초대 콘서트... 하다못해 정모라도 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길 ㅡㅜ
at 2011/05/08 16:12





